[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생각

신연강

전명희 기자

작성 2020.09.17 11:01 수정 2020.09.17 12:29



가을이 더디 오는 것은 하얀 뭉게구름을 이고 오기 때문일 게다. 아니면 바람을 타고 천진하게 놀고 있는 솔개의 날개깃에 실려 조금씩 오고 있기 때문일 거다.

 

나무들이 온통 손을 흔드는 날, 파란 하늘에 두 점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타원을 그리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간다. 어느새 생각을 실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새가 되어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생각의 새. 기분 좋은 날 솔개처럼 솟구쳐 오르지만, 비 오는 날 젖은 흙처럼 푹 가라앉으니 말이다. 생각의 또 다른 특징은 꾸물거리거나, 대충 잡으려 하면 어느새 멀리 날아가 버린다는 것. 재주 좋은 사람은 떠오르는 영감을 영상으로 포착하거나 음악으로 표현하겠지만, 아날로그적 방식에 익숙한 내 손은 스케치하듯 펜을 움직여간다.

 

주말을 보내고 오랜만에 스쳐 지나는 생각을 붙잡았다. 그 생각은 이별에 관한 것, 이별의 절차에 관한 것이다. 수많은 생각 중 하필이면 이별에 관한 것이니 좀 칙칙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생각을 안겨준 사람이야말로 정말 측은하게 느껴지니, 편치 않은 마음 따윈 어느새 먼발치로 밀려난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몇 해 전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싫든 좋든 가끔 매스컴에 등장하는 유명인사라 무슨 소설 같은 얘기인가 싶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의 하직 인사는 마치 그의 마지막 소설처럼 다가오고 잊혀갔다.

 

소설가로서 또 대학교수로서 그가 걸어온 길은 평범하지 않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보장된 길을 굳이 마다하지 않을 텐데……. 그래서 그의 여정을로 표현한다면, ‘잡초가 여기저기 뻗친 비포장 길로 묘사하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닦여진 길을 좋아한다. 인위적으로라도 잘 꾸며지고, 발길이 많이 닿아서 넓게 잘 다져진 안정된 길을 선호한다. 그러한 길을 마다하고 잡초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발에 차이는 돌로 인해 뒤뚱거리며 넘어야 하는 척박한 길. 그러한 길을 외롭게 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은 작가 마광수를 시대를 앞서간 죄로 단죄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촌극은 아니었을까. 사유의 길, 문화적 성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이점에 있어서 다양한 견해가 있겠으나, 외경을 넓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이 넓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다양성도 존재하고 생명력도 담보할 수 있으며, 길 자체에 대한 논란과 비판을 통해 성찰 또한 생기게 된다. 길 자체를 폐쇄하는 것, 생각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것, (나의 판단이건대) 이런 것이 그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고갈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전 한 문학모임에서 우연히 그를 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단죄하는 여론이 한창일 때였다. 그는 자신의 역정으로 인해 대학을 떠나 야인으로 조용히 칩거하고 있는 듯했다. 매스컴을 통해 그의 소식을 들은 터라 그의 처지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직접 그를 보니 생각만큼 침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위축돼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일이라 장담할 수는 없겠으나, 세상을 떠나는 전조로서의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그에게 드리워있지 않았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편한 모습으로 조용히 지방의 한 모임에 온 것이지만, 이미 상당한 짓눌림과 외로움을 안고 있었다면 그는 필시 절망감에 몸부림치며 모임에 겨우 발을 디뎠을 것이다. 여하튼 죽음을 떠나 작품과 문인으로서의 길만을 생각해볼 때 나는 그를 야산의 투박한 길을 걸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생각의 한 장을 들여다본다. 이별의 절차 생각이라는 글이다. 글의 요체는 우리 인간이 성장해서 사랑을 알게 되고, 남녀가 사랑을 나누게 되면 두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 관계로 발전하게 되기까지에는 여러 복잡한 절차가 요구된다는 내용이다. 저마다의 색다른 연애 과정을 거쳐,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에 있어서 법적 구속력에까지 호소하여 두 사람 간의 우정과 사랑을 묶어두고자 하는 과정의 긴 시간이 바로 만남과 사랑의 절차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별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아주 간소하거나 심지어는 생략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일방적인 이별이든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이별이든, 남녀 간에 사랑이 식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을 우정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연인이든 부부 사이였든 헤어진 뒤에도 이따금 만나 서로 간의 정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이며, “이별 뒤에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아는 우리 사회의 애정풍토가 몹시 안타깝고 한탄스럽다.”라고 말한다. 결국 만남의 절차가 있듯이 이별에도 반드시 절차가 필요하다.”라는 것이 그의 이별에 관한 생각이다.

 

이 외에도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 여러 다양한 분야에 걸친 생각이 많아서, 그의 책생각을 조금씩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다. 마광수 작가는 생각에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이상한 생각, 야한 생각, 오늘 생각, 내일 생각 등 많은 글을 담아놓았다.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재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다양한 글이다. 역시그답다라는 생각을 한다.

 

마광수는 떠났다. 생각의 표지 안 날개에서 해맑은 소년처럼 밝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 아래에 생의 이력과 작품목록이 적혀있다. 다시 책 표지를 펼치며 제목 아래에 적힌세상을 바꾸는 것은 생각이다라는 문구를 눈에 담는다. 많은 생각을 끌어 모은 그의 생각. 세상과의 이별을 앞에 두고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승을 떠났을까.

 

보름달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노라면, 한 생명체로 지구에 왔다가 이별 연습없이 훌쩍 떠나면서도 행복해하는 하는 것 같아서, 측은했던 마음을 접고 새털구름이 끝없이 펼쳐진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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